어른 아이

미숙한 사람은 도처에 있다. 아니, 성숙한 사람이 드물다. 무엇이 사람을 여물게 하는 걸까. 왜 어떤 이는 나이가 들고 또 들어도 기어코 어른이 되지 못할까.
존 브래드쇼(John Bradshaw)가 쓴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를 통해 ‘내면아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양손으로 책을 꽈악 움켜쥐던 기억이 난다. 마치 두껍게 덮어둔 가림막을 누군가 확 열어젖히고 내 비밀을 찾아낸 그런 느낌이었다. 400쪽이 넘는 책 곳곳에는 이런 시절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주저앉고, 울고, 절규했다. 나는 자주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안다.
미숙한 사람이란 무의식 속에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 않아!' 하고 외치는 존재다.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다는 뜻이다. 이루지 못한 과제가 여전히 남았음을 말해준다.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이든, 가질 수 없었던 장난감이든, 먹을 수 없었던 과자이든, 놀아주지 않았던 친구들이든...그것을 갖기 전까지는 절대 어른이 되지 못한다. 아니, 되고 싶지 않다. ‘바로 그 부분'이 충족될 때까지는 아이인 채 남아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거야? 다 괜찮아.”“이제 난 어른이야. 스스로 채우면 돼.”이러한 남의 말과 나의 말을 되뇌며 훌훌 털고 어른이 되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건 나조차 그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손을 홱 놓아버리는 장면이다. “네가 알아서 해야지!”그리고 그 순간 슬픔과 절망으로 흐려지는 아이의 눈동자. 그 익숙함에 잠시 멈칫한다.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기묘하도록 깊고 맑은 눈망울은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미숙함을 잘 알기도 한다. 심리학과 자기계발 서적을 탐독하며 진즉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했다. “자신을 사랑하세요.”하지만 꿈을 버리지 못한다.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주 어린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안아주기를, 그때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안겨주기를,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그래서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고집스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 ![]()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학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