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표
삶이라는 경기장에서 쓰러지다
남은 시간 동안 점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그러기 위해 그분의 뜻을 잘 헤아리고(말씀을 공부하고, 성찰하고), 실천에 필요한 토대를 만들고(몸을 건강하게 하여 충분한 에너지를 채우고, 꿋꿋한 마음을 갖고),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기.
이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어 전력 질주해야 하는 경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나긴 여정이자 내 삶 그 자체임을 알기.
시작이 있고 결승점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준비가 되지 않으면 출발선에 설 수 없다고 믿었다. 이미 출발해 버린 후로는 결승점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모든 에너지를 끌어와 전력 질주하느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결승점이라 여겼던 지점은, 가까스로 다다라 보니 결승점이 아니었다.
당황한 나는 그래도 계속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새로운 결승점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아니,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로운 결승점이 나타날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
에너지가 고갈되는 사태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을지 모른다. 내가 이 모든 걸 '경기'라고 잘못 인식하고 정의했을 때부터 예견되지 않았을까.
경기라고 여긴 탓에 그토록 오랜 시간을 관중석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까다롭고 기준 높은 관객.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출발선에 서는 사람들에 대한 어이없음에 휩싸인.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수천 번 다짐하는 동안 흘러가는 시간. 그 속의 불안. 전력 질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의아함.
그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든 움직여 좌표를 바꾸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때까지도 나는 내내 관중석에 남아 있었다.
진짜 그곳을 '경기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심지어 '내 기준'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더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두려움에 떠밀려 출발선에 섰다. 그리고 전력 질주를 하다가, 계속하다가,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결승점을 잃고서도 계속 뛰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서 생각했다. 결국 나는 안 되는 거였구나. 내게는 무리한 경주였는데. 이제 다 끝났어. 곧 누군가 와서 나를 이 트랙에서 끌어내겠지.
막막한 두려움과 허탈함, 기묘한 후련함에 휩싸여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하늘이 보였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차마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고개만 옆으로 돌렸더니 풀밭이었다.
그곳은 경기장이 아니었다. 트랙도 관중석도 없었다. 내가 출발선이라 생각했던 자리는 화단의 조약돌이 늘어선 자리였을 뿐이며, 트랙이라고 여겼던 그 바닥은 구불구불하고 어여쁜 풀밭의 오솔길이었다. 결승점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처럼 누워있는 사람, 예전의 나처럼 숨 몰아쉬며 뛰는 사람, 풀밭에 등을 돌리고 '자신의 출발선'에 겁먹고 있는 사람, 그 모두를 구경하는 사람; 풀밭 여기저기를 신나게 들쑤시며 호기심에 가득한 사람, 뒷짐 지고 천천히 거니는 사람. 저마다 다른 형태와 속도로 움직이는 이들이 거기 있었다. 가만히 그들을 관찰하다가 알아버렸다. 그중 행복한 이들은 모두 그 풀밭 구석구석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음을.
그 사람들은 모두 그 풀밭'에서', 그 풀밭에 '지금 있는 것'들을 '그 모습 그대로', '자기 방식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그 이외의 어떤 것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내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을 때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땅!' 소리와 함께 달려야 하는 내 모습.
수많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경우의 수 같은 것. 내가 넘어지거나, 남이 넘어져 내 쪽으로 쓰러지거나, 다리에 쥐가 나거나, 나도 모르는 이유로 선수 자격이 박탈되거나...
내가 있던 곳은 '제대로 해내지 못할 내가 만든 미래'였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내가 만들 실패, 실수와 무능으로 엉망이 되어버릴 앞날, 과거의 상처를 거름 삼아 확신이 되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불신'. 그토록 못 믿을 사람이 내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극도의 불안.
결국, 아무리 나름의 준비를 하고 열심히 뛰어도, 어두운 미래로 끌려갈 뿐이라고 내 무의식은 속삭였던 셈이다.

그 모두가 허상이었다. 내게는 너무도 진짜같이 보여서, 손에 잡히리만치 형태감이 느껴져서 나를 계속 찌르고 아프게 했지만 말이다. 나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그분이심임을 매 순간 느낄 수만 있다면 진작 고통은 사라지고 말았을 텐데. 이제 아는데도 박차고 일어날 힘이 없기에 그냥 누워만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힘이 날까.
물끄러미 행복한 이들을 바라본다. 그중 '경기'를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풀밭의 모든 걸 누린다. 온몸과 시선으로 "다른 곳? 굳이 왜 거길 가야 하는데?"라고 외치는 듯하다. 즐겁고 기쁘게.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설렘이나 즐거움 아닌 불안과 초조함을 안겨 준다면. 그건 가짜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전력 질주 내내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금의 내가 이곳을 풀밭이라 인지한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밀려든다.
비록 아직 누워있지만,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이곳을 즐기기 시작한다.
옆으로 웅크린 채 누워있는 내 왼뺨을 간지럽히는 보드라운 풀잎, 흙냄새, 이런 자세에서만 시야에 들어오는 아주 키 작은 들꽃들.
이제 일어서고 나면, 다시는 '다른 어딘가'로 가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동그라미나 무한곡선처럼 살 것이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동심원을 그리며, 무한곡선처럼 미끄러지며 당신을 향하는 그런 삶을 만들 테다.
준비도 마무리도 필요 없고 시작과 끝도 없는,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움직이는...그런 흐름을 만들면서 그 안에서 살아갈 테다.
예기치 못한 모든 일도 이 풀밭의 다채로움을 알려주는 탐험이라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격한 감정이 일어날 때면 내 마음이 얼마나 다양한 현으로 음을 연주할 수 있는 보물인지를 알아채 주겠다.

풀밭의 모든 존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 나를 이끄시는 분 또한 그분이시라는 것.
그 진리만 가슴에 새기고 있으면 다 괜찮다.
나쁜 마음을 먹는 순간에도 숨기지 않고 그분께 터놓으며 기도 속에서 조언을 구하겠다.
말씀을 공부하고, 곰곰이 되새기고, 그분이 주신 몸을 보듬어주는 음식을 먹고, 그분께서 주신 자연 속에서 힘이 닿는 한 많이 움직이고, 아직은 어려울지라도 그분과 나 자신을 믿고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나가기.
이 어떠한 과정에도 종착역이란 없으며 그 모두가 하나의 씨앗임을 잊지 않기.
나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씨를 심어 나가면 된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 귀여운 등을 보며 활짝 웃으실 테고, 씨앗 위에 물도 뿌려주시고, 예쁜 꽃을 피우도록 햇살과 바람도 보내주실 테니까. 또한 내게 그늘도 만들어주실 테니까.
지금 이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다 이루어졌다.